마르크스 경제학/잉여가치론

2016 메모1 : 노동가치론은 생산에서의 계급투쟁에 관한 이론이다

맹군_ 2016. 5. 20. 19:42

노동가치론은 가격이 결정되는 과정의 배후에 '생산에서의 계급투쟁'이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주류경제학에서 가격이론은 자원과 생산물을 배분하는 규칙, 즉 상품간 교환비율이 결정되는 원리를 밝히는 것이다. 주어져 있는 것은 자본과 노동으로 대표되는 생산요소와, 이를 일정량과 질을 가진 다양한 생산물로 바꿔주는 생산기술이다. 우리가 밝혀야할 경제적 문제란 이 한정된 생산요소를 각 생산단위에 얼만큼씩 배치해서 각각의 생산물을 얼마나 만들어내야하는지에 관한 규칙이다. 사용가능한 자원의 총량과 생산가능한 결과물의 양적 한계(기술수준)이 주어져 있다면, 이를 각 생산단위에 배분하는 기준은 결국 생산물들이 서로 어떤 비율로 교환되느냐에 달려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경제주체들이 각 생산물에 대해 매기는 주관적 선호(욕망)의 순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즉, 가격은 1)부존자원량 2)생산기술 3)주관적 선호가 주어지면 하나의 체계로 결정된다.

주류가 정의하는 가격이란 '비율'의 체계, 즉 상대가격이다. 빵과 와인이 각각 얼마의 값어치가 있냐를 따지는게 아니라 빵과 와인 중에 어느것이 몇배 더 좋은지(선호)와 똑같은 자원을 투입했을때 어느쪽이 상대적으로 효율적으로 생산하는지(기술)만 알면 자원의 총량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N개의 상품이 있다면 N-1개의 비율만 찾으면 배분의 규칙은 완성된다.

마르크스에게도 이런 교환비율의 체계, 상대가격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다. '교환가치'다. 그리고 한 상품을 화폐와 교환할때의 비율을 '가격'이라고 정의했다. (주류에서 정의하는 가격은 곧 상대가격인데, 다만 화폐를 기준으로 상대가격을 표시할 경우엔 '명목가격'이라고 한다) 마르크스 역시 상품과 화폐의 교환비율은 수요-공급에 따라서도 변화한다고 말했다.

상품과 화폐는 서로 시장에서 교환된다. 따라서 그 교환비율인 가격도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마르크스는 그 상대적 비율의 이면에, 상품 각각에 절대적 크기를 갖는 어떤 실체가 내재해있어 비율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가치'다. 주류이론처럼 가격의 본질이 상대가격이라면, A와 B라는 2개의 상품은 단 하나의 교환비율(예컨대 1:2)만 결정되면 된다. 'A 1개는 B 2개와 교환된다'는 것과 'B 1개는 A 1/2개와 교환된다'는 것은 같은 비율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가격의 본질이 가치라면, 1:2의 교환비율 이전에 'A 1개에 200의 가치량, B 1개에 100의 가치량'이라는 2개의 가치가 먼저 결정되야 한다. N개의 상품에는 N개의 가치가 존재해야 한다.

사실 가격이론의 본질이 주류가 정의하는 '자원배분의 규칙을 찾는 것'이라면 상대가격 결정이론 만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만약 시장가격의 '중심'으로서 생산가격을 중시한다해도, 굳이 (노동)가치론을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스라파주의처럼 생산기술과 분배율에 근거한 상대가격이론을 채택하면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전형문제에 관한 숱한 논의에서 상당수가 스라파주의로 빠진 이유가 가격의 본질에 대한 주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르크스의 가치론은 '상품간' 교환관계를 나타내는 상대가격의 배후에 '각 상품의' 내재적 가치가 존재하고, 그 실체는 노동이라는 이론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재화들의 교환'과 그 비율이지만, 실제로 교환되는 것은 그 재화를 만드는데 드는 노동의 양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의 의미는 주류이론에서의 '생산요소'로서 노동과 다르다. 주류에게 생산물과 자본, 노동은 모두 교환되는 상품이며, 서로간에 교환비율이 존재한다. 노동과 다른 상품간의 교환비율은 존재할 수 있어도, 노동이 교환비율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상품간 교환비율이 특정 상품(노동)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는 이상한 의미가 돼버리고, 노동의 가격을 노동이 결정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다. 만약 이런식으로 노동가치론을 이해한다면 그냥 모르는게 낫다.

마르크스는 시장에서 교환되는 것은 인간의 노동하는 능력, 즉 '노동력 상품'이라고 한다. 이 노동력이 생산과정에서 실제로 일을 할때 발현되는 것이 노동이다. 즉, 노동은 상품이 아니며 교환의 대상도 아니다. 노동은 재화를 만드는 힘이다. 시장에서 상품이 거래될 때 실제로 교환되는 것이 '노동'이라고 말한것은, 노동력 상품이 교환됐다는 뜻이 아니라 '노동가치'를 기준으로 상품이 교환됐다는 의미다.

주류의 가격론이 2차원(상품의 수량과 교환비율)이라면, 마르크스의 이론은 3차원(상품의 수량과 교환비율, 노동가치량)이다. 주류이론에서 가격은 상품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선호)를 가진 소비자와 생산요소간 결합비율(기술)을 가진 생산자가 시장에서 만나면 결정이 된다. 마르크스의 3차원 체계는 생산요소의 기술적 결합비율로 환원될 수 없는 '생산에서의 사회적 과정'이 가격결정에 개입한다. 시장에서의 상품교환이 결국 노동(가치)의 교환(노동력 상품의 교환이 아니다!!)이고, 그 노동이 생산과정에서 노동자로부터 추출되는 것이라면, 시장가격(상대가격, 교환비율)의 결정은 노동시장에서 구매한 일정 수의 노동자로부터 얼마나 많은 노동량을 뽑아낼 수 있는지 여부에도 달려있게 된다. 상품의 공급자(자본가)가 시장에서 교환을 통해 획득한 '이윤'이라는 가격의 실체도 결국 노동이며, 구체적으로 노동력의 구매에 들인 것보다 절대적/상대적으로 더 많은 노동을 뽑아낸 크기(잉여노동)이다.

기업경영과 생산활동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과정들은 '경영학'의 영역에 불과하거나 수학기호로 주어지는 '생산함수'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가치론에 입각해서야 비로소 상품의 가격 결정과 구체적 생산과정이 경제학적으로 연관될 수 있다. 기업이 왜 휴일을 줄이고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는지, 기술향상 없이 정해진 노동시간 안에 노동강도를 늘리는 것만으로도 이윤이 늘어날 수 있는 이유는 뭔지, 노동과 자본을 동등하게 생산요소로 취급하면서 왜 기업은 노동투입을 감축하는 기술에만 편향되는지, 생산력은 증대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왜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지 등등의 문제는 주류경제학의 생산이론에서는 규명하기 힘들다.

생산과정에서 (잉여)노동을 뽑아내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자본가와 노동자가 벌이는 계급투쟁이다. 이 과정은 소비자의 선호체계로도, 생산기술의 특성으로도 결정될 수 없는 사회적 과정이며, 이것이 상품의 가치를 결정한다(가치론). 상품의 가치는 이윤율 균등화를 통해 생산가격으로 전형되고(생산가격론), 이 생산가격을 중심으로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 조건이 작용해 구체적인 상품-화폐 교환비율이 결정된다(시장가격론). 신고전파의 가격이론이 곧바로 시장가격을, 고전파는 생산가격을 설명하려 했던 것이라면, 마르크스는 그것들의 배후에 노동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였고 전형문제란 것도 그 연장에 있다. 이는 가치론이 수학적 논증만으로 해소될 수 없는 사회이론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