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메모5 : 노동가치론을 반드시 실증해야 하는가
현실에서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건 시장가격과 거래량 밖에 없다.
한 상품이 시장에서 개당 1000원에 거래됐다고 했을때, 어떤 계산수단을 동원하더라도 이 상품의 생산가격, 가치, 추상노동량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가 없다.
총계 수준에서 관측되는 총 노동량과 총 화폐가격을 직접 연결시켜서 계산하기도 하는데(노동시간의 화폐적 표현), 시장에서 관측되는 가격이 균형가격에서 이탈된 불균형 시장가격인 이상(단기적으론 거의 항상 그렇다) 진정한 가치크기는 알기 어렵다.
설사 장기 추세를 통해 가치를 추정해냈다고 하더라도, 자연시간으로 측정된 노동량과 가치량이 비례한다고 볼 수도 없다. 노동강도, 숙련 등의 문제가 개입되면 똑같은 자연시간 1시간이 생산한 가치량은 달라질 수 있다. 추상노동은 '사회적' 개념이기 때문에 개별 생산단위에서 실제 투하한 노동과는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공간적/시간적으로 노동과 가치를 어떻게 계량화할 수 있는가도 복잡한 문제다.
이런거 저런거 따지다보면, 항상 불균형한 '시장가격'과 자연시간으로 측정되는 '노동시간' 자료만 가지고서 노동가치론을 실증한다는건 무리다. 결국 자의적인 가정들을 수없이 전제하고 나서 끼워맞추기 식으로 추정해내는 방법밖에 없을거다. (물론 그런 것들을 통해 가치가 실존한다는 '흔적'을 찾아가는 시도 자체는 의미있을수도 있다)
사실 마선생의 지적에 따르자면 가치량, 추상노동량을 정확하게 계산해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상품사회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노동과 생산은 사적소유에 기반해 개별적으로 이뤄지지만, 잠재적인 교환가능성(가치)만 가지고 있던 상품들이 시장에서 '화폐'로 전환될때만이 가치는 현실적인 사회적 힘을 얻는다. 그런데 양적으로는 '생산'된 가치(잠재적인 것)과 '실현'된 화폐가격(현실적인 힘) 사이엔 괴리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생산이 사전 계획되고 그에 따라 정해진 거래가 이뤄지는 경제가 아닌 이상, 사적노동과 사회적노동 사이의 차이는 필연적이다. 사회적 노동 혹은 추상노동량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려면, 생산할 때부터 이미 사회적으로 결정돼있는 생산일때만이 가능하다. 시장경제란, 상품을 만드는 사적노동이 시장에서의 교환(사회적 과정)을 거쳐 사후적으로 끊임없이 조정되는 과정일 뿐이다.
주류경제학은 관측될 수 있는 현실의 시장가격만이 전부이고, 그것이 곧 균형이라는 관점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 매우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이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노동가치론은 '사후 조정'에 불과한 시장의 배후에 놓인 '사회적 분업과 사적/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이라는 본질의 영역을 파악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본질은 어쨌든 사유와 개념을 통해 드러내야하는 수밖에 없다.
가치론을 실증하지 못한다고해서 실존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판단 자체가 특정한 이론적 관념에 따른 것이다. 마르크스경제학에서 실증해야할 영역도 결국 시장가격의 움직임어야 할텐데, 시장가격을 있는 그대로(주류의 방식)가 아니라 노동가치론에 근거해 분석했을 때 도출되는 차별성있는 결론들이 실증의 대상이 되야한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이론은 중요하다.
노동가치론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젠 좀 '통계적 증명'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류경제학이라고 해서 가격결정 메커니즘의 핵심인 효용함수와 생산함수의 존재를 실증한 적이 있나? 오히려 현실의 자료에 부합하는 함수들을 역으로 가정했을 따름이다. 이론적으로 밝혀야할 고유의 영역이 있는거고, 통계적으로 보여야할 영역이 따로 있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