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경제학/가치론

20140516 가치의 실체는 왜 노동일 수 밖에 없는가

맹군_ 2014. 9. 30. 20:43

항상 문제가 되는 지점은 '가치(value)'의 실체가 왜 (다른 것도 아닌) 노동이어야 하냐는 문제다. 여기서 명확히 해야되는 부분은 3가지다.

1) '사용가치'와 '가치'의 구분
2) '가치'와 '가격'의 구분
3) '가치'와 '노동'의 관계설정

우선 1) 부터 해결하자. 어떤 상품이 가치를 갖는다고 표현할 때, 이는 그것이 쓸모가 있다거나 유용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상품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물질적인 유용성 그 자체를 가리킬때 맑스는 '사용가치'란 용어를 썼다.
하지만 '가치'는 한마디로 교환의 기준이 되는 크기, 교환가능성의 척도다. 이건 상품의 객관적 쓸모와 관계없이 다른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사람이 사는데 공기는 필수적이지만만(즉 사용가치가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 즉, 교환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기에 가치는 0이다. '가치'란 한 상품이 다른 상품(혹은 화폐)과 교환될 수 있는 일정한 양적 크기를 갖는 속성이다.
사용가치는 물질적 속성이지만, 가치는 사회적 속성이다. 한 생산물은 어느 사회에서나 '사용가치'를 갖지만, 그것이 교환을 목적으로 생산되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조건 하에서만 '가치'를 갖는다. 따라서 가치의 결정요인은 그 생산물이 갖는 물적 속성과는 다른 원리에 따라 사회적으로 결정되야 한다.

2)로 넘어가자. 사회적 속성인 '가치'는 그 자체로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보이는 건 물적 속성인 '사용가치' 뿐이다. 가치는 분명 상품사회(시장경제)에서 상품 속에 실재하는 속성이지만, 직접 교환이 되기 전에는 그 존재와 크기를 알 수가 없다. 가치가 확인 가능한 형태로 현실화 된 것이 바로 '가격'이다.
가격은 정의상 한 상품이 화폐와 교환되는 비율이다. 펜 한자루가 1000원이란 것은 펜이라는 상품이 1000원이란 화폐와 교환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 교환비율은 어떻게 결정되나? 1)에서 말했듯이 펜의 사용가치와는 별개다. 더구나 펜과 천원짜리 화폐는 물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것이라, 겉으로는 어떤 비율로 교환이 되야하는지 공통된 기준이 없다. 보이에는 않지만, 펜과 천원에 각각 동질적인 공통분모가 있어서 양적으로 비교가능할 때 둘은 교환비율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가치'란 속성이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한 상품을 바라볼 때 그것의 '쓸모'를 나타내는 물리적 속성인 사용가치와, 이걸 사고팔때 얼마만큼의 화폐와 교환되는지를 나타내는 사회적 속성인 가격이 당장 "눈에 보인다". 그런데 질적으로 다른 상품들이 동일한 척도인 '가격'을 갖는다는 것은 언뜻 모순이다. 이는 모든 상품이 동질적인 어떤 속성을 공유한다는 뜻이고, 맑스는 이를 '가치'라고 말했다.

3)으로 넘어가자. 서로 다른 상품들의 가격을 결정하는 제3의 공통분모를 '가치'라고 부른다면, 가치라는 동질성의 실체는 뭘까.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맑스는 모든 상품의 이질적 특성을 제외하면 노동생산물이라는 공통성만 남기 때문에 가치의 실체를 노동이라고 논증하고 넘어가버렸다.
여기에 온갖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이의를 제기한다. 1) 노동 말고도 공통성은 많다. 예컨대 탄소를 가지고 있다던가. 2) 노동이라 하더라도 노동량의 차이가 가격 차이를 설명해내지 못한다. 노동투입이 많은 상품이 싸고 노동이 거의 안들어가는 복제품이 비싼 경우들은 너무나 많다. 등등
따라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노동과의 관련성도 의심되는 '가치' 개념은 논증할 수도, 쓸모도 없는 이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가격은 각각의 상품에 들어간 공통속성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시장에서 사람들이 흥정을 통해 결정하는 균형수준만 찾을 수 있다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게 주류경제학의 결론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일단 '가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 후에, 그 배후에 있는 '가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찾아나가는 방식으로는 굳이 노동일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해결방법은 오히려 거꾸로 질문을 해야한다.

"왜 노동은 가치가 되는가?"

사실 가치는 상품사회에서만 통용되는 역사특수적인 개념인 반면, 노동은 어느 사회에서나 생산에 투입되는 필수적인 요소다. 보편적인 속성은 가치가 아닌 노동이다. 가치의 실체가 노동이라면, 왜 노동이 하필 '상품사회'에서는 가치라는 것의 실체가 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사회적 분업이 존재하는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 구성원들의 총 노동을 각각의 생산부문에 일정한 크기로 배분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의류업에는 100명, 건설업에는 200명 등등. 봉건제에서는 이것이 신분적 예속관계에 따라 미리 정해져있고, 사회주의에서는 계획에 따라 배치된다. 각각 방식은 다르지만 어쨌든 '총노동의 사회적 배분'은 필수적이다.
상품사회에서 노동의 양적 배분은 시장에서 확정되는 가격에 따라 생산영역에서 조정된다. 가격이 높아지면 그 생산부문에 더 많은 노동이 배치될 것이고, 가격이 낮아지면 반대가 된다. '자본이나 원료도 배분되지 않냐'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들 역시 이전의 생산에서 노동에 의해 창출된 것이기에 결국 노동량의 배치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가치라는 것이 먼저 주어지고 그것의 결정원인으로 노동이냐 아니냐가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총 노동량이 배분되어야 하는 보편적 경제원리가 상품사회라는 특정한 사회 속에서는 가치/가격이라는 속성의 특수한 법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가치의 실체가 하필 노동인게 아니라, 가치는 처음부터 노동이었다.

그럼 왜 노동의 배분이라는 보편원리가 왜 '가치'라는 특수한 형태로 관철될까. 이는 상품사회라는 생산양식의 특성 때문이다. 분업체계 속에서 노동의 사회적으로 배분되야 하지만, 실제로 생산은 사적소유에 따라 각각이 별개로 진행된다. 즉, 각 부문에 얼마나 노동이 배분될지를 개별 생산주체들이 알아서 결정해버려 사전적인 조정이 불가능하다. 이는 사전적으로 노동을 투입해 생산한 물건을 사후적으로 시장에서 교환해야만이 조정이 된다. 팔리지 않으면 노동을 빼고 더 팔리면 넣는 식으로. 따라서 각 생산물에 노동이 얼마나 배분됐는지가 각 상품이 얼마로 교환될 수 있는가(즉 가치의 크기)의 형태로 나타난다.

마지막 결론.

가치는 처음부터 노동이었다. 가치의 실체가 노동 이외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접하는 생산물이 왜 가격/가치를 갖는지, 대체 그게 뭔지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