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19. 이윤극대화와 특별잉여가치
주류 미시경제학에서는 기업의 경제적 목표를 '이윤극대화'로 이론화 한다. 여기서 이윤이란 '경제적 이윤'을 의미한다. 이는 보통 상품의 판매수입에서 비용을 제한 '회계적 이윤'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는 다음의 수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판매수입 = 회계적비용 + 회계적이윤
= 회계적비용 + (정상이윤 + 경제적이윤)
= (기회비용) + 경제적이윤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정상이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정상이윤이란, 해당 기업이 현재의 사업을 하지않고 다른 분야에 투자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이윤을 의미한다. 예컨대, 투자자금을 그대로 금융기관에 맡길 경우 얻을 수 있는 평균 수익도 정상이윤에 해당할 수 있다.
주류경제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정상이윤은 '기회비용'에 포함된다. 기회비용은 어떠한 경제적 선택으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의 가치를 뜻한다. 정상이윤은 기업이 다른 곳에 투자했더라도 얻을 수 있는 몫을 해당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포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에 기회비용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활동을 통해 획득하는 진정한 이윤은 정상이윤을 뺀 '경제적 이윤'이 된다.
기업의 이윤극대화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정상이윤=평균이윤, 경제적이윤=초과이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초과이윤의 가치론적 기초는 특별잉여가치의 획득이다. 다수 자본간 경쟁 하에서 개별자본이 생산성 증대를 통해 사회적 평균보다 싸게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될 때, 평균수준의 잉여가치(평균이윤) 이상의 특별잉여가치(초과이윤)을 얻게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특별잉여가치의 추구->노동생산성 증대->상대적잉여가치획득->유기적구성의 상승->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을 제시한 바 있다.
개별자본 경제활동의 동기를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로 국한시키고, 정상이윤은 오히려 비용으로 보는 주류의 관점은 (이윤의 원천을 은폐한다는 본질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심지어 그들은 '완전경쟁' 하에서는 경제적이윤이 0이 된다고 말하면서도, 각 기업은 결국 제로가 될 그것을 향해 경제활동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개별자본의 행동 동기(경제적 이윤 추구)와 자본간 경쟁에 따른 시장 전체의 결과(경제적 이윤=0)은 구분해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경제학에서 평균이윤율과 개별자본의 투자 동기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고 본다. 평균이윤율이 형성되는 과정은 개별 자본가들에게 보이지 않는, 상이한 생산부문의 자본들 사이의 경쟁전을 통해 사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개별 자본가에게는 외적으로 주어지는 지표로서 (정상이윤이 비용으로 인식되듯이) 자신들의 사업 여부에 의해 달라질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오히려 최대이윤의 획득에 사활이 걸린 개별자본으로서는 평균이윤율의 크기가 높거나 낮은 것보다는 초과이윤(율)의 크기, 즉 내가 다른 자본보다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다.
물론 거시적으로 '총자본'의 입장에서 잉여가치 획득 능력과 자본축적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은 결국 (초과이윤=경제적이윤=0 을 전제로 하는) 평균이윤율의 수준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평균이윤율을 거시경제적 관계의 중심에 두는 것은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개별자본의 행동 동기라는 측면에서는 다르다. 현실경쟁이 지배하는 표층에서 나타나는 경제주체들의 행동원리와 심층에서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구분하고, 전자의 구체적 활동 속에서 어떻게 후자가 발현되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자본론>에서 설명된 특별잉여가치-> (...) -> 이윤율저하의 메커니즘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