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에서의 경쟁과 수요-공급
1.
- 오랜만에 정기 세미나를 참여하게 되면서 <자본론> 3권을 다시 읽고 있다. 예전보다 수요-공급 법칙과 시장경쟁 관한 마르크스의 언급이 더 눈에 띈다. 마르크스가 수급경쟁의 법칙을 부정했다는 편견은 명백한 오해다. 오히려 그것이 시장가격의 움직임을 가장 직접적으로 결정한다고 봤다. 다만 <자본론>에서는 시장가격 변동의 구심력으로 작용하는 중심가격, 즉 가치와 생산가격의 결정을 설명하는 것이 일차적 과제였다. 수요-공급 법칙과 시장경쟁 그 자체에 대한 구체적 분석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채로 연구가 중단됐고, <자본론> 내에서 종종 수급경쟁을 언급할 때 마다 "이에 대한 구체적 분석은 우리의 연구 범위를 벗어난다"고 적었다.
- 그럼에도 <자본론> 곳곳에서 나타나는 관련 구절들을 통해 시장경쟁과 수급법칙에 관해 몇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 업종 내 경쟁 : 동일업종 내 시장가치와 개별상품가치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특별잉여가치(초과이윤)의 획득을 둘러싼 경쟁,
2) 업종 간 경쟁 : 이종업종 간 이윤율 차이에서 발생하는 자본이동 및 평균이윤율 형성과 관련한 경쟁,
3) 수요-공급 법칙 : 중심가격(가치와 생산가격)의 주변에서 시장가격을 변동시키는 요인.
2.
- 이 중 가장 현실경쟁에 가까운 형태는 3)이다. 무엇보다도 1)과 2)는 수요에 대한 고려가 없고, 공급자인 자본 간 경쟁만이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측정가능한 가격은 수급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가격'이다.
- 시장가격과 생산가격은 엄연히 다르다. 2)의 결과인 '전형'에 대해 가치가 시장가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전형이란, 시장가격 변동의 중심이 (노동량에 비례하는)가치에서 (총투하자본에 비례하는)생산가격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고로 전형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시장가격을 직접 다룰 수 없다. 2)의 수준에선 아직 수급법칙의 작용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마르크스주의적 계량분석의 어려움은 사실 전형문제 보다는 마르크스주의적 현실경쟁론(수요공급론)의 부재가 더 큰 요인이다. <자본론>에서 생산가격텀으로 계산된 일반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관한 이론을 전개했지만 이는 장기추세의 분석에 해당한다. 당장 10년 주기(중/단기)의 경기순환만 해도 수급요인과 시장가격의 순환적 변동을 해명해야 한다.
- 이런 문제를 우회하는 쉬운 방법이 있다. 시장가격=생산가격으로 놓고 현실의 데이터를 그대로 <자본론>의 공식들에 적용하는 것이다. 노동시간의 화폐적표현(MEL)을 써서 계량을 돌리는 현대 마경의 모든 시도들은 이런 전제 위에 있다. 이는 관측된 모든 시장지표들을 수급균형의 결과로 보는 주류경제학의 전제와 다르지 않다.
- 하지만 마르크스의 생각은 달랐다고 본다. 시장지표들은 항상적인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중심가격을 이탈한 상태로 나타나며, 시장가격 변동의 장기적인 경향으로서만 균형이 달성된다고 봤다. <자본론>에 전개된 법칙들은 이런 의미에서 수급요인을 배제하고 균형을 가정해 도출한 것이다.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이론적 단계의 법칙들을 직접적으로 현실 데이터와 연관시켰을 때 나오는 결과들이 얼마나 유의성이 있을지 잘 모르겠다. 적어도 이윤율의 운동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신용팽창과 수축, 독점력 등의 교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시장가격이윤율에서 (교란요인을 제거한) 생산가격이윤율을 추출해내는 작업부터 선행돼야하지 않을까 한다.
3.
- 다음으로 1)의 개별자본간 경쟁에 관한 문제. 이는 다른기업보다 높은 이윤율을 달성하려는 자본의 경쟁적 투자활동이 사회 전체적인 이윤율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을 설명하기 위한 키 포인트다.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의 근본 원인인 기술혁신(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의 추동력은 평균이윤보다 높은 초과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개별기업의 투자다. 주류경제학에서 기업의 행위를 정상이윤을 넘는 경제적 이윤의 극대화로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 그런 의미에서 나는 '특별잉여가치'가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의 기초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윤율이 개별기업 투자를 결정하는 신호가 된다는 세간의 해석은 위에서 말한 모순(개별기업이윤율 극대화와 일반이윤율의 하락)을 설명하기 어려운 반쪽짜리 해석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윤율은 조건에 따라 종속변수이면서 설명변수이기도 하다.
- 초과이윤의 근거가 되는 '동일업종 내 시장평균과 개별자본 간의 차이'는 2)나 3)의 문제와는 독립적이다. 즉, 시장평균와 개별의 차이를 측정하는 기준이 가치든 생산가격이든 시장가격이든 1)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다만 동일업종 내에서는 모두가 동일한 가격이 적용됨에도 실제 생산조건은 개별자본마다 다르다는 사실만이 문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