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경제학/시장경쟁론

일반적 불균형 체계로서 시장가격 이론

맹군_ 2017. 9. 19. 08:19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전개한 재생산표식론이나 가치-생산가격 전형이론은 전 산업을 걸쳐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룬 상태를 가정하고 있다. 수급불균형의 가능성을 추상해낸 이러한 상태를 '이념적 평균'이라 부른다. 모리시마 같은 학자들이 수리경제학적 방법을 통해 마르크스의 가치-생산가격 이론을 주류경제학과 유사한 일반균형체계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다.

이념적 평균에서 현실경쟁의 수준으로 구체화시키면 이러한 일반균형체계는 무참히 깨진다. 일반균형체계에서는 n-1개의 시장이 초과수요일때 나머지 한개 시장은 반드시 초과공급일수 밖에 없고, 시장가격의 즉각적인 조정을 통해 현실에서는 항상 균형이 달성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고유의 화폐/신용 이론을 통해 일반적인(즉 전 부문에 걸친) 과잉생산 혹은 과소생산의 가능성을 도입했다. 화폐의 퇴장, 신용의 팽창과 수축 등을 고려하면 '판매 없는 구매'를 통한 생산의 무제한적 확장이나 '구매 없는 판매'로 인한 일방적 공급과잉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때 형성되는 시장가격은 수요-공급을 청산하지 못하는 일반적 불균형 가격이 된다.

일반균형체계에서 도출된 재생산표식이나 전형표식의 균형조건(각각 C2=V1+S1, 총계(순계)일치 명제) 역시 수급불균형을 도입하는 순간 모두 깨진다. 전자는 자본주의의 균형성장경로를 분석하는 이론이고, 후자는 산업간 가치생산과 분배의 균형을 달성하는 가격체계를 도출하는 이론이다. 마르크스의 시장가격이론은 이러한 생산/분배/성장보다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의 수요-공급간 힘겨루기와 균형으로부터의 이탈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그럼 대체 마르크스는 현실에서의 일반적 불균형을 논하기 이전에 <자본론>에서 왜 이념적 평균, 혹은 일반균형체계를 먼저 전개했을까. 이는 <자본론> 1권에서 가격형태의 특성에 대한 그의 언급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가격과 가치량 사이의 양적 불일치의 가능성은(...) 이 가격형태를 '끊임없는 불규칙성 사이에서 맹목적으로 작용하는 평균으로서 자신을 관철하는 법칙'이 적용되는 생산양식에 적합한 것으로 만든다"

일반적 불균형 하에서의 시장가격은 무작위/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반균형(생산가격)체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탈하면서도 동시에 수렴해나가는 순환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균형은 '항상적인' 불균형이 '경향적으로'(<-> 즉각적으로) 조정되는 결과로서만 존재하는, 현실적 상태가 아닌 '이념적 평균'이라는 것이다.


덧. 일반적 불균형 체계에 대한 아이디어는 대학원시절 일본 마르크스경제학자들의 재생산표식론 논쟁과 정치경제학비판 플랜 논쟁을 공부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공황을 '항상적 균형 표식의 일시적 파괴'로 보는 기존의 재생산이론을 비판하고, '누적된 불균형(과잉생산)이 파괴적으로 해소되는 균형화 과정'으로 공황을 이해한다. 물론 모리시마나 오키시오 같은 학자들과는 매우 다른 관점이고, 서구의 마경학계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