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에 표나 수식이 집중적으로 나오는 부분이 몇개 있는데, 1권에서 잉여가치, 2권에서 재생산표식, 3권에서 가치-생산가격 전형과 차액지대 부분 정도로 기억한다. 오늘 말하고 싶은건, 차액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제시되는 수치들이 상품의 수량, 즉 사용가치량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맑스의 논의를 그대로 따라갈때는 이게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내가 자본론의 내용을 주류경제학의 방법론과 1대1로 비교하려고 할 때마다 종종 문제를 일으키곤 했었다.
가장 익숙한 1권의 상품가치 구성을 예로 들자. W=C+V+S 에서 각 변수들은 각각 생산물,생산수단,노동력,잉여가치의 가치량을 나타낸다. 생산물을 사과라고 치자. 그런데 이 식만 봐서는 이게 사과 몇개의 가치인지, 사과나무 몇개가 투입됐는지, 노동자는 몇명이 고용됐는지 알 길이 없다. 최소한 q*w=m*c+n*(v+s) 정도로 세분화해줘야 수량을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w c v s 는 '단위당 가치'를 나타난다. (물론 '고용량'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n 이 잠깐 등장하긴 한다)
물론 1권에서 맑스가 밝히고자 했던 것은 상품가치 중에서 노동자의 노동에 의해 새롭게 창출되는 가치가 노동력가치와 잉여가치로 분할된다는 것,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한 절대적/상대적 증대 방식이 있다는 것, 즉 '착취'의 존재를 수치(가치량)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생산물이 몇개 생산되고 생산수단은 몇개 투입되느냐의 문제는 '당장에는'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2권의 재생산표식에서도 마찬가지다. 1부문과 2부문 사이의 균형식 C2=V1+S1 은 두 부문사이에 원활한 재생산을 위한 '가치량'에서의 균형조건을 나타낸다. 3권의 전형과정도 부문간에 잉여가치가 재분배된다는 것을 보여주는게 목적이다. 이 모든 경우에 단위가격이나 수량은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주류경제학은 다르다. 주류경제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미시경제학의 제1 목표는 '(단위)가격과 수량'의 균형점이 존재하는가를 규명하는 문제다. 생산물, 생산수단, 노동력에 대해 구매하려는 자들이 필요로 하는 수량(수요)와 판매하려는 자들이 시장에 내놓는 수량(공급) 사이의 일치(균형)가 목표이고, 각각의 단위가격들이 얼마로 주어지느냐 (가격체계)가 목표를 달성키 위한 수단이 된다. 정리하자면, 수요-공급의 균형을 달성하는 균형 수량과 균형 단가를 구하는게 미시경제학이다.
반대로 앞에서 언급한 <자본론> 1,2,3권의 각 부분에서는 수요-공급이 '이미 균형인 걸로 가정된' 상태로 논의가 진행된다. 수량의 과잉과 과소는 존재하지 않고, 단위가격은 이를 보장하는 수준에서 주어진다는 가정하에, 총 가치의 각 부분들이 어떻게 형성되고(1권), 순환하고(2권), 재배분 되는지(3권)를 고려할 뿐이다. 이는 각각의 시장에서 수량의 수요-공급이 조정되고 이 과정에서 시장가격이 오르내리는 '현상'들보다 더 심층에서 작용하는 법칙들이다. 부분적으로 언급되는 몇가지를 제외하면, <자본론> 1~3권에서의 분석 수준과 미시경제학에서의 분석 수준은 일치하지 않는다. 맑스가 살아있었다면 논의가 더 전개된 이후 구체적으로 시장 현상을 분석하는 단계에서 미시경제학에서 다루는 내용이 전개됐을 것이다. 1
그러다보니 맑스의 이론을 가지고 구체적인 현실분석에 들어갈 때, 특히 주류경제학의 개념들과 맞붙으려고 할때 이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과잉생산 공황'이다.
과잉생산은 수요-공급 불일치의 문제다. 수량의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이를 조정해야할 시장가격이 제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시장가격이 조절능력을 상실할 수준까지 소비수요를 제한하고 일방적으로 공급을 확장시키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고유한 모순 때문이다. 그 '모순'은 <자본론> 1~3권에서 전개된 수준에서 설명이 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수급불균형과 시장가격의 비정상적 작동으로 드러나는지를 수치적으로 개념화하기 위해서 별도의 이론화가 요구된다.
즉, 맑스경제학을 위한 '미시경제학'이 있어야 현실경제 분석에 있어서 맑스주의적인 개념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가치론에 기반한 시장가격의 이론이어야 하고, 수량의 '균형' 아닌 '불균형'을 밝히기 위한 이론이어야 한다. 2
- (주1) 이런점에서 3권의 '전형문제'를 잉여가치의 배분이라는 맑스 본래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수급균형을 만족하는 '가격체계'와 이에 대응하는 '가치체계'의 해가 존재하는가라는 미시경제학적 문제로 잘못 접근해 그놈의 전형논쟁이란게 수학적인 해법 논쟁으로 치달아버렸다. [본문으로]
- (주2) 수량, 즉 사용가치량이 <자본론>의 분석 수준에서도 문제가 될 때가 있다. 바로 '노동생산성'의 문제다. 노동생산성은 일정한 노동량에 대해 얼마만큼 생산량이 나오느냐를 의미한다. 즉, 가치량과 사용가치량이 서로 하나의 개념속에서 연관되는 것이다. <자본론>에서는 상대적 잉여가치, 특별 잉여가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상승, 이윤율 저하 경향 등의 부분에서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수치변동의 핵심이 된다. 따라서 '수급불균형'의 문제와 별개로 생산력 발전이 가치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할 때도 수량의 문제가 중요하다. 이는 따로 논의되야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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