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경제학에서 수요-공급 이론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우선 분석 수준을 어느 정도에 둘 것인지를 명확히 하고 시작해야 한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균형상태'를 가정하는 것과, 수급 불일치 상태에서 '균형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은 추상수준이 다르다. 주류의 수요-공급 이론은 현실의 균형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지만, 오히려 맑스에게 수요-공급이론은 현실의 불균형 상태와 균형을 향한 조정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따라서 맑스의 논의에서 수요-공급 이론은 불균형이 균형으로 나아가는 '현실 경쟁 과정'에 대한 논의기 때문에 추상수준이 낮다(구체적이다). 반면 수급일치를 전제한 균형가격 이론들은 이미 경쟁의 결과 사회적 평균이 달성된 상태(ex.평균이윤율 형성)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추상수준이 높다(현실경쟁을 추상해버렸기 때문). 자본론에서 주로 언급되는 가치/가격이론은 산업간 자본이동 자체를 추상하거나(가치 또는 단순가격), 현실 경쟁의 '과정'은 추상하고 경쟁의 '결과'로서 평균이윤율이 형성된 상태를 대상으로(생산가격) 하기 때문에 후자에 해당한다. 즉, 가치나 생산가격은 수요-공급 불일치 가능성을 배제한 '균형가격'에 해당한다.
맑스경제학에서 수요-공급 이론을 말하려면 균형가격의 범주인 가치나 생산가격과는 별개로 '불균형가격'의 범주를 설정해야 한다. 이를 시장가격이라 부른다. 즉, 현실 경쟁 과정을 구체적으로 고려한 가격이 '시장가격'이다. 시장가격은 균형가격 이상/이하로 화폐를 지불하려는 개별 소비자들의 의사 차이(수요곡선)와 사회적 평균 수준 이상/이하의 생산능력을 가진 개별 생산자들의 공급 능력 차이(공급곡선)의 변화에 따라서 수시로 변동한다. 그것은 경향적으로 균형을 향해가지만, 항상적으로 균형을 벗어나있다. 수요-공급이론은 이처럼 현실적 '상태'로서의 불균형과 현실적 '과정'으로서 균형화를 설명하는 경쟁이론이다.
이를 '가치-가격의 괴리'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수급불일치'에 따른 가치-가격 괴리 문제는 , '가치에서 생산가격으로의 전형' 문제에서 제기되는 가치-가격 괴리와는 추상수준이 다른 논의다. 이를 뒤섞어 버리는건 솔직히... 후 자본론 좀 읽자. 암튼, 개별 상품의 생산가격이 그 가치로부터 괴리하는 것은 (수요-공급 불균형에 따른 사회적 평균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산업간 자본이동의 결과 '평균 이윤율'이 형성됐을 경우 사회적 균형상태의 체계적 변형을 의미한다. 가치라는 균형에서 생산가격이라는 불균형으로 옮아가는게 아니라, 균형가격의 기준이 가치에서 생산가격으로 체계적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투하노동가치론이니 추상노동가치론이니 하는 것이 있다. 이건 '가치' 개념이라는 상당히 높은 추상수준에서의 서로 다른 논의이지, 균형가격이냐 불균형가격이냐 하는 구체적 수준에서의 논의가 아니다. 즉, 가치를 규정하는 '사회적 평균'이란 것을 실제 생산에서 투하된 노동을 기준으로 말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교환 등 사회적 범주를 포괄하는 추상노동이라는 기준으로 말해야하는 것인지의 문제다. 그런데 이때의 '교환'을 현실의 경쟁과정과 불균형상태 그자체로 이해하면 역시나 추상수준의 혼동이다. 만약 수요-공급 불균형상태에서 형성되는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환산되는 노동량이 곧 추상노동이라는 식으로 이해해버린다면, 가치-생산가격-시장가격이라는 다양한 층위에서의 맑스의 풍부한 논의들을 다 무위로 돌려버리는 짓이다. 내가 직접 저서로 읽은 루빈 아저씨의 논의에서 추상노동 개념은 결코 그따위 것이 아니었다.(실제로 <Essays on Marx's Theory of Value> 의 마지막 파트에서는 추상노동가치와는 별도로 수요-공급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솔직히 시장가격 개념이랑 가치/생산가격(균형가격들) 개념을 뒤섞어버리는 논자들은 대체 자본론에 나오는 특별잉여가치나 지대에 관한 공부들은 하셨나 모르겠다. 생산성 발전 과정에서 사회적 평균 가치와 개별 상품 가치 사이의 차이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현실 경쟁이 일어나고, 일시적인 특별잉여가치(초과이윤)가 발생하고, 선도적인 개별 자본이 가치나 생산가격 이상/이하로 상품을 팔고, 시장가격이 조정되고, 그 과정에서 초과이윤이 지대로 변화되기도 하는 것들이 자본론에 다 나온다. 맑스의 가치론을 발전시켜야 하니 어쩌니 하면서, 적어도 맑스가 이야기했던 가치/가격에 대한 풍부한 논의들은 다 고려해봐야하는데 그러지도 않는 논의들은... '기본'은 좀 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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