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생산물의 가치'와 '잉여가치'는 다르다.
이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맑스주의 경제학을 다른 주류/비주류 경제학들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이 결정적으로 빠지는 오류가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어느사회에서나 잉여생산물은 생산되고, 그것이 상품으로 교환된다면 그것은 가치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부분적으로라도 상품관계가 존재했던 어떤 사회에서도 '잉여생산물의 가치'라는 것을 찾아낼 수 있다.
예컨대 1) 농노가 영주의 땅에서 일해서 수확된 잉여생산물을 영주가 시장에 내다 팔아서 얻는 화폐, 혹은 2)자기 작업장을 소유한 대장장이가 자기 노동의 결과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화폐를 얻어 각종 생산비용과 생활수단 구매비용을 제하고 남은 부분. 이는 '잉여생산물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결코 '잉여가치'라고 할 수는 없다.
잉여가치의 생산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전제할 때만 가능하다. 즉, 화폐소유자가 '더 많은 가치'를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투자(생산수단의 구매+타인 노동력의 고용)를 하고, 생산물을 팔아 투자한 것 이상의 화폐(가치)를 얻는 생산관계가 대상이란 것이다.
여기서는 자본가의 '가치 증식'이 생산의 목적이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잉여생산물을 원하는 영주나 자기 노동에 대한 등가의 사용가치를 획득하게 목적인 소생산자는 이런 의미에서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
물론, 양적으로는 '잉여가치'가 곧 '잉여생산물의 가치' 만큼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과정에서 창조된 가치에서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뺀 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착취된 잉여노동의 응고물이란 점에서도 둘은 양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하지만 잉여생산물이 어떠한 사회적 생산관계 하에서 생산됐는가, 다시 말해 잉여노동의 착취의 질적인 형태가 무엇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이라는 특정한 생산관계 하에서 만 잉여생산물과 잉여노동은 '잉여가치'로서 취득된다.
노동가치론과 잉여가치론을 자꾸 양적인 문제로만 바라보고 다른 경제학과 직접적으로 비교하려는 시도에서 흔히 보이는 오류는 이런 근본적인 개념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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