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랑 병행하면서 허겁지겁 만들어냈던 석사논문이었지만, 어쨌든 준비하면서 한가지 느낀점은 '통계는 과학적 성격보다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이었다. 자연과학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회과학(중에서도 내가 공부한 경제학)에서는 그렇다는 생각이다.
이론은 하나의 가설이고 통계와 실험은 그것의 과학성을 최종 보증해주는 역할이라고 보통 인식된다. 그런데 막상 따지고 보면 과학성의 보증은 통계보단 이론 쪽이고, 통계는 이론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포장지 같이 느껴진 경우가 많았다.
주류경제학에서도 순수하게 통계적인 기법을 통해 나온 결론들을 가지고 이런저런 해석을 붙이는 것은 수준이 좀 떨어지는 취급을 받는다. 실제로 통계수업 때 그런식으로 레포트를 쓴 후 논문으로 확장시켜 볼까 싶어 지도교수한테 갖다줬더니 못마땅해 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그런 결과들을 어떻게 나왔는지를 설명하는 논리적 이론을 전개하고 그에 따른 모델 하에 통계를 돌려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미 '이론' 속에 그러한 통계적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도록 미리 구조가 짜여져 있다. 정 안되면 통계자료의 선별에 이런저런 제한을 가하면서 손질도 한다. 발표를 할때는 '이런이런 실증적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이건 과학이다'라고 말하지만 그건 테크닉이고, 결국은 이론전개 과정이 얼마나 '과학적인 틀'에 맞고 결론을 논리적으로 끌어내느냐에서 게임이 끝나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주류경제학은 사실 인과관계가 적용되지 않은 기초 통계자료를 통한 현상적, 경험적 추세들, 상관관계들 그 자체에서 어떤 직관을 끌어내고, 이를 그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모델을 고안하는 방식을 쓴다. 그러니 계량기법을 통해 이론을 검증한 결과도 그대로 나온다. B를 보고 A를 만들어 낸 다음, A를 검증해보니 B가 나오더라는 식이다.
몇달씩 컴퓨터 앞에 앉아 씨름하면서 변수 하나 바꾸고 표본하나 빼고 하면서 결과가 출렁출렁 대는 걸 봤고, 그렇게 하나둘 넣다빼다 원하는 수치가 나오면 '만세!'를 부르며 "제 모델의 과학성을 검증해줄 통계적 결론이 나왔습니다"라는 논문까지 썼다.
통계는 과학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아직은 믿고있지만, 그만큼이나 '정당화'를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증적인 방법을 통해 검증되지 못했다고 해서 맑스경제학을 공격하는 논리도 역시 이데올로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자기들도 그런식으로 과학성을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증되지 않기 때문에 맑스경제학이 틀렸다고 본다기 보다는, 자신들과 전혀 다른 그 이론적 전제들과 논리전개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다. 결국은 이론의 싸움이고, 역사와 실천이 최종 증명자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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