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태 이후 관(官)이 화두가 됐다. 너도나도 관피아 때리기에 한창이고 공무원들의 나태함과 부패를 욕하는데 혈안이 됐다. 한때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난리더니, 이제는 규제가 너무 풀렸다고 난리다. 규제를 푸나 조으나 여전히 공격대상은 공무원이고, 정부 행정기관이다.
한국에서 관(官)과 공무원에 대한 불신은 어느정도 이해할만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를 공공영역의 '본성'인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관의 성격 역시 그것을 둘러싼 물질적·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되야 한다.
주류경제학에서 '정부'의 비효율성을 공격할 때 쓰는 종종 쓰는 예가 계획경제다. 계획경제 하에서는 모든 것을 정부가 결정하는데, 시장경제에서도 정부의 비효율성과 공무원들의 나태함이 이렇게 극심한데 계획경제는 오죽하겠냐는거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건 상식처럼 들린다.
그러나 계획경제(사회주의) 하에서의 공공영역과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의 공공영역은 그 자체로 비교대상이 될 수가 없다. 사실 전자에서는 '민간'영역이라는 독자적 공간이 없기 때문에 공공이란 별도의 공간을 정의하기 힘들다. 후자에서는 기본적으로 사적 자본들이 활동하는 공간(=시장)으로서의 '민간'과 제3자로서 독자적으로 기능하는 공적 영역이 구분되는데, 여기서의 공적영역을 단순히 사회 전체적 수준에서 양적으로 늘린게 사회주의라고 생각하는 건 틀렸다. 둘은 서로 다른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규정되기 때문에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정부 혹은 공공부문이 갖는 비효율성의 원인은 그것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적 자본과 함께 존재한다는데 있다. 공공영역은 특정 개인이나 법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복리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적소유의 틀을 벗어난다.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걷거나 국채를 발행해서 자산이나 지출의 기반이 마련된다. 그러나 동시에 시장에서 사적 자본들과 나란히 경쟁하고 거래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독립적 소유주체로 존재한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정부'는 공적이면서 동시에 사적이고, 비시장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시장의 한 행위자인 것이다.
공공부문에서 부채의 누적이 문제가 되고 저성장이나 비효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부가 사적 자본과 동일한 위치에서 평가되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필요를 목적으로 미리 계획되어 움직이는 정부영역과 사적 이윤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민간영역은 본질적으로 다르고, 전체로 움직이는 정부와 개별 주체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자본 사이에 규모의 차이도 상당하다.
자본주의 하에서 정부 영역은 언제나 공공성과 시장성이라는 모순된 성격이 공존하며 그 안에서 진동한다. 관피아나 공무원의 부패와 같은 문제는 '공공'의 본성이라기 보다는 시장성에 의해 왜곡된 공적 영역의 부정적 측면으로 봐야한다. 따라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출발점은 민간영역을 통해 공공영역을 견제하는 것(박근혜)이나, 민-관의 협력에 기반하는 방식(박원순)이 아니라, 철저히 공공성의 확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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