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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경제학/경기순환론

경기순환과 주기적 공황

경기순환와 주기적 공황

우리나라와 미국 주식시장은 요즘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거품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때마다 그걸 비웃듯이 주가는 또 한번 치고 올라가기를 반복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전세계적인 경기 회복과 무역량 증가를 보면 안심할만한 것 같기도. 특히 우리나라 거시통계를 보면 수출이 국내경기의 멱살을 잡고 선두에서 끌고가는 모습이라 수출 성과와 상관성이 큰 주가가 이렇게 높게 올라가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수출이든 주가든 최근의 성과는 거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산업이 하드캐리한 덕분이다. 바꿔 말하자면, 링크한 기사 내용처럼 비대칭성이 너무 큰 성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증권맨들이나 나 같은 자금운용기관 사람들에겐 일단 지금 자산시장이 호황이고 실물경기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게 중요하므로 전반적으로 낙관론이 우세해있다.

그러나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현재 상황을 곱게 바라보긴 어렵다. 공황은 언제나 확장과 번영의 '필연적 결과'로 나타나고, 그 징후는 자산시장에서 먼저 드러나기 마련이다. 전문적이고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꽤나 전형적인 경기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 같다. 2007-8년 위기 이후 10년 정도 지났다는 것도 신경쓰인다. 전통적인 마르크스경제학에서 제시해왔던 7~11년(대략 10년)의 주기성은 일부 예외주기를 제외하곤 거의 법칙처럼 적용돼왔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언급한 내용이 '신자유주의(혹은 자본주의)를 끝장낼 정도의'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경제위기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명백한 오해다. 물론 현대의 마르크스주의자 다수가 그러한 구조적 위기를 주로 연구하고, 이윤율이 추세가 꺾였냐 안꺾였냐를 논쟁하면서 지난 금융위기를 평가하는데 주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르크스 본인을 포함해 전통적으로 마르크스경제학에서 '공황'이라는 용어는 대략 10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경기순환 상의 한 국면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1930년대 대공황처럼 위기 자체가 10년 가까이 지속되는 경우와는 달리, 주기적 공황은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이상 제철 감기처럼 찾아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나아가 자본주의가 당장에라도 끝장나기를 바라는, 혹은 그렇게 믿는 학자들이나, 그걸 빌미로 대중들을 쉽게 선동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좌파들은 매번의 위기를 구조적/체계적 위기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만큼 더 짧은 시계를 갖는 경기순환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자신들의 예측이 잘 안들어맞자 처음엔 더블딥이 올거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추계해보니 이윤율이 안꺾였더라'며 발뺌을 하기도 했다. 장기불황의 가운데에서도 경기순환은 계속되기에 더블딥은 커녕 새로운 회복국면에 들어선다는 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체계적 위기가 올거나 아니냐를 따지는데에는 흥미가 떨어진게 사실이다(중요하지 않다는게 아니다). 그것보다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과잉생산과 파괴적인 공황을 주기적으로 '반복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게 아닐까 한다. 내 생애 한번은 큰 사고를 당할꺼라는 예언보다, 당장에 연말마다 내 팔이 부러져서 몇개월동안 깁스를 하고 다녀야 한다는 진단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주기적 공황의 고통은 오롯이 대중들의 몫이다.

IMF나 OECD 같은 주요 국제기관에서도 내년은 올해보다 세계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도체 수출에 거의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에도 내년 중반 이후 반도체 업황이 관건이다. 경기순환의 상승세가 꺾이고 공황이 찾아온다고 해서 그것이 꼭 2007년과 같은 금융부문에서의 대규모 패닉이 재현된다는 보장은 없다. 경기순환이 신용의 팽창과 수축을 동반하긴 하지만, 그 자체로는 실물경제의 순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꼭 시스템을 뒤흔들어야만 경제위기가 의미있는게 아니다. 다시금 기업 도산과 실업, 소득의 저하, 불평등의 확대가 심화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것이고, 회복 사이클로 들어가기 전까지 그 고통을 우리가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크스경제학이 제시해야할 정책과 대안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게 더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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