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비차스 등, <자본주의의 국가 : 경제, 사회, 헤게모니> 번역
1장. 위기의 시대
역사적 공백기(A historical interregnum)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 경제, 사회, 정치의 격변을 불러오며 수년간 누적된 긴장을 증폭시켰다. 이 보건 위기는 각국 경제와 사회를 붕괴시키며 국민국가를 전례 없는 중심적 위치로 부상시켰다. 이어 2022년에는 시대를 상징하는 지정학적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으로 미국과 주요 유럽 동맹국이 개입한 전면전이 벌어졌고, 미·중 간의 지정학적 긴장이 더욱 고조되었다.
2020년대 초반은 ‘팬데믹 위기(Pandemic Crisis)’라 부를 수 있으며, 이는 국내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사회와 정치의 구성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소비에트 블록이 붕괴된 이후 30년간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전 세계에 걸쳐 지배적인 질서로 자리잡았으며, 그 결과는 심각한 사회적 긴장과 새로운 헤게모니 경쟁의 출현이었다. 이 시기의 결정적 사건으로는 2007~2009년의 대공황(Great Crisis),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동‧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잇달아 벌인 전쟁이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출현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더해지며 세계적 불안정성이 극단적으로 심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의 근원은 자본주의적 축적 자체에 있다. 이 점에서 2007~2009년 대공황 이후의 시기는 잘 알려진 그람시적 의미에서의 역사적 공백기(historical interregnum)에 해당한다. '낡은 것은 죽어가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태어나지 못하고 있어 온갖 병리적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1)인 것이다. 오늘날 전 세계의 중심부 경제는 취약한 생산과 약탈적 금융으로 특징지어진다2). 금융화는 뿌리 깊게 자리 잡았으며, 금융은 정부 정책의 주요 수혜자이자 극소수 과두지배층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는 원천이 되었다. 선진 자본주의의 역사적 중심지들에서 경제성장은 미약하고, 고용은 불안정하며, 빈곤은 만연하고, 소득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며 심각한 사회적 균열을 낳고 있다. 40년 넘게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 자본주의는 이제 소진될 징조를 보이고 있다.
또한 보건 위기는 유급 노동시간과 무급의 지루한 재생산노동 시간 사이의 구조적 불균형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이 위기는 중심부 자본주의 사회가 생존하기 위해 필수적인 노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당 부분이 여성과 소수인종 및 소수민족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오랜 세월 여성주의자들이 일터에서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싸워왔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재생산노동의 상당 부분은 다시 여성들에게 전가되었고, 가정 내 가정폭력 또한 증가했다.
세계경제 주변부에서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새로운 중심지가 등장하며 경제 활동의 세계적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인류는 여전히 저소득과 취약한 고용조건에 갇혀 있다. 주변부 국가들의 세계경제 편입은 새롭고 해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생산·무역·금융이 교차하는 네트워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세계적 팽창은 자연환경에 치명적인 충격을 주었다. 보건 위기는 이윤 추구가 인류와 자연 간 유해한 관계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증거를 보여주었다.
1) 그러나 그람시의 간결한 표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G. Achcar(2022), ‘Morbid Symptoms: What Did Gramsci Really Mean?’, Notebooks: The Journal for Studies on Power, 1 (2), 379–87
2) 이 책 전반에 걸쳐 중심부(core)과 주변부(periphery)의 구분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를 제시하지 않았다. 이 분야에는 격렬한 논쟁들이 얽혀 있기에 — 그 중 일부는 이후 장들에서 간략히 검토된다 — 불필요한 용어 논쟁은 피하고자 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그 시작부터 불균등한 발전을 특징으로 해왔지만, 중심부과 주변부의 분석적·지리적 경계는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중요한 점은, 현재의 불균등성이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경제관계가 전 세계를 지배한 결과이며, 더 이상 ‘전(前) 자본주의적’이거나 ‘비(非) 자본주의적’인 특징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늘날 중심부–주변부의 구분은 과거의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우리는 이후 장들에서 그 분석적 함의를 점진적으로 밝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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